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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회

초월(初月)마다 초월(超越)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회장단 20주년 축하메시지

붉은 노을 속에서 초월회를 본다

권준호(4대 회장, 권준호법률사무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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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하 20년,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나.

 

IMF 고통 속에 있던 시절, 대구의 산업기반은 모두 무너지고, 당시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얘기는 들은 적도 않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대구산학연을 주축으로 하여 언론, 학계, 전문가 등으로 뭉친 젊은 신진을 중심으로 "청년의 눈으로 미래를"이라는 주제에 빠져 고민하던 나날들, 시청 옆 소주집에서는 그때도 소주병이 수십 개씩 쌓이곤 했었지, 아마.

 

그 무렵 30대 대구 젊은이의 NGO형태 모임은 처음이었고, 시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등을 초청하여 토론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처음에는 모임의 성격과 동기를 수차례나 설명하고 나서야 강사 섭외가 될 정도였었지. 주변에선 너희들이 뭘 아느냐는 핀잔도 많았고,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이름도 당시 임시로 지었지만 파격적으로 초월회라 하고, 매년 주제를 정하여 그 주제에 맞게 월 계획을 꾸리고, 회원도 회원이 추천하는 형식을 혁파하여 필요한 섹터를 정한 후 그 대상을 모셔오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여 나름대로 다른 모임과의 차별화에 신경 쓰던 시절이었지, 아마.

 

여느 모임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열기가 시들해져서 어느 해 연말에는 회원 4명이 참석하여 회장단을 뽑고 이ㆍ취임식을 하던 위기의 시절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즐거운 시절도 있었지. 초월회는 회합 후 뒷풀이를 두산동에 위치한 카페 나무노래에서 자주 가졌다. 카페가 지하 1층인데다 우리만을 위한 자리 옆에는 나무 나이테가 보이도록 해 둔 아담한 공간에서 때로는 새벽까지 음주와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지. 과일에 마른 안주가 주로 우리의 안주였지만 윈저에 태운 텐텐주는 나름 위력이 있었다. 기억나는 건 여성회원들도 대부분 뒷풀이까지 갔고, 술을 사양하는 경우는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함께 그곳에 갔던 인사들이 자무등처럼 지나가는데 시장님, 지사님을 비롯하여 각급 기관장님, 교수님 심지어 강사로 오셨던 스님도 있었다. 그곳에서만큼은 모두 한마음으로 술과 전쟁하던 즐거운 시절이었지, 아마.

 

카페 주인 정 사장님도 초월회 뒷풀이를 다른 식당으로 옮기자 카페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 카페에서는 초월회원 외에도 다른 지역인사들이 자주 왔기에 카페에 가면 함께 어울리는 그런 시간이 되곤 했다.

 

신입회원들에 대해서도 회장단의 철저한 검증 외에도 월례회 전 사전 검증도 있었지. 한번은 법원 옆 식당에서 점심에 폭탄주를 수십 잔 돌려 몇 명은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했는데, 여성회원도 있었지, 아마. 지난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지나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는 것은 나름 작은 일탈은 있었지만 적어도 회원들 모두에게 나름의 소명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힘들어진 지역, 앞이 내다보이지 않은 나라에 대한 걱정, 청년의 눈으로 해결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 처음 초월회에서 인연을 맺은 회원들은 이미 20년 이상 사귄 소중한 동지들이다. 이제 60의 고지에 서서 지나온 길을 보면 젊었을 때 가졌던 꿈과 생각이 담배 연기마냥 느껴진다. 다시 그때처럼 고민하는 우리 지역 후배 회원들이 많으면 ...... 그때 주축을 이루던 동지들은 후배 회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 그 동지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 생각이 많아진다. 주축이었던 동지와 상관없이 초월회는 영원히 발전할 것이고 앞으로 나가겠지만 초기 개척자들의 마음을 조금만 참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